지난주, 안국역 앞을 지나다가
문득 시간을 조금 비켜 선 공간으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그렇게 발걸음이 닿은 곳이 아트선재센터였다.
건물 외벽에 걸린 커다란 배너.
푸른 하늘 아래 검은 천 위에 적힌 전시 제목
**〈적군의 언어〉**는,
마치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와는 다른 차원의 말을
건네려는 듯 보였다.

🏛️ 미술관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
이번 전시는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선재아트센터 전관을 사용하는 대규모 개인전이다.
하지만 ‘전시를 본다’기보다는
어떤 세계 안으로 들어간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공간 곳곳에 설치된 조형물들은
정리된 질서보다는 변화 중인 상태에 가까웠고,
완성된 결과물이라기보다
지금도 무언가가 분해되고, 다시 생성되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걷다 보면
이곳이 미술관인지, 폐허인지,
혹은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미래의 장소인지
잠시 헷갈리게 된다.


👤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
이번 전시의 작가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는
아르헨티나·페루 출신 작가로,
이번 전시가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이라고 한다.
그는 미술관을
과거를 보존하는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
비인간과 포스트휴먼, 합성 존재들이
끊임없이 개입하고 변화시키는
살아 있는 지형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이 전시에는
인간 중심의 시선이 조금씩 밀려나 있고,
대신 이름 없는 존재들과
시간의 흔적들이 조용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가상에서 현실로, 타임 엔진
전시의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타임 엔진’**이다.
비디오 게임 엔진과 인공지능,
그리고 가상 세계를 결합한 디지털 시뮬레이션 도구.
이 타임 엔진 안에서 만들어진
가상의 조각들은
다시 현실 공간 속 조형물로 구현된다.
현실인지 가상인지,
과거인지 미래인지 분간이 흐려지는 순간.
우리는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이 아니라
이미 이 시스템 안에 들어온 존재가 된다.


🌱 전시를 걷는 동안
이 전시는
이해하려 애쓰면 오히려 멀어지고,
그냥 천천히 걷고 바라볼수록
조금씩 다가온다.
낯설고, 때로는 불편한 감정마저
의도된 감각처럼 느껴졌고,
그 감정들 역시
이 전시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전시를 나오며
선재아트센터를 나서며
‘무엇을 봤다’기보다는
어떤 시간을 통과했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남았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이후에는
어떤 존재들이, 어떤 언어로
이 공간을 기억하게 될까.
안국에서,
조금 다른 속도의 사유가 필요할 때
이 전시는 충분히 좋은 선택이 되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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