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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승부' 스크린 너머의 바둑, 그리고 진짜 승부

by 여행자(hmdnc) 2025.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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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우연히 넷플릭스에 올라온 영화 *‘승부’*를 틀었다. 조훈현과 이창호—대한민국 바둑 역사의 가장 찬란한 별들이자, 스승과 제자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전설을 남긴 두 사람.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알기에, 그리고 어렴풋이 기억하기에, 그 영화는 단지 한 편의 드라마가 아니었다.

 
 
 

영화는 강렬했다. 스승과 제자의 싸움은 마치 검객의 마지막 결투처럼 그려졌다. 조훈현은 냉철하고 위압적인 스승으로, 이창호는 그늘 속에서 복수심을 불태우는 제자로 묘사된다. 긴장감, 감정의 격돌, 그리고 결국 스승을 넘어서는 장면까지—모든 것이 드라마틱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나는 문득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현실은, 조금 달랐지…”

실제의 조훈현은 이창호에게 단순한 ‘스승’ 그 이상이었다. 불안정한 가정환경 속에 있던 이창호를 발굴하고, 그를 자신의 집에 들여 키우다시피 했다. 매일 새벽부터 밤까지 이어진 바둑 공부는 고되었지만, 그 안에는 정성과 믿음이 있었다. 어린 이창호는 말이 없고 조용했지만, 눈빛은 누구보다 뜨거웠다. 조훈현은 그런 제자의 가능성을 알아봤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영화 속처럼 둘의 관계가 갈등으로만 채워졌다면, 이창호는 조훈현을 뛰어넘을 수 있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서로를 아끼고 믿었기에, 더 치열하게 싸울 수 있었다. 바둑판 위에서는 스승과 제자가 아니라 두 명의 프로였지만, 바둑판 밖에서는 여전히 서로를 존중하는 가족이었다.

실제로 조훈현은 제자에게 패했을 때 담담히 말했다.

“졌지만 기뻤다. 너는 이제 진정한 기사다.”

그리고 이창호는 조훈현을 평생의 스승이라 부르며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없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조훈현과 이창호의 통산전적은 314번 승부로 이창호가 314승이고 조훈현이 119승을 기록하고 있다.

영화 *‘승부’*는 그들의 이야기를 각색했고, 때론 극단적으로 그렸다.

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나는 그들의 진짜 이야기를 더 떠올릴 수 있었다.

스크린 너머,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짜 승부’는 이겼다 졌다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걸어온 시간 속에서 피어난 깊은 인연의 무게였다.

오늘도 내 일상에서 작은 ‘승부’들이 계속된다.

그 속에서 나는, 조훈현과 이창호처럼

누군가에게 길을 내어주고, 누군가에게 길을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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